제로 우먼 ; 붉은 수갑 - 노다 유키오 (1974)

 70년대 일본의 소위 '핑크 폭력물'. 
핑크+폭력, 참으로 노골적인 전략이다. (핑크라는 단어의 여성성에 대한 판단은 일단 내 능력 밖이다) 섹스와 폭력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남성의 대 로망. 그것이 일본이라는 '특이한 한 현상'의 감성과 결합했을 때 하위문화 상품의 극단을 달린다.

 당연히(?) 만화가 원작인 '제로 우먼-붉은 수갑'의 여자 형사(스기모토 미키)는 여성의 우월적인 폭력을 상품화하려는 전도된 페미니즘의 의도(아니면 의도했는지도)와 정반대의 캐릭터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수많은 여성 캐릭터 중에 가장 독특하다(독특하다고 좋은 것은 아님). 현란한 붉은 수갑 액션씬으로 프롤로그를 장식한 제로 우먼은 이러저러하여 인질이 된 여인을 구출하러 광기가 좔좔 흐르는 집단에 홀로, 대놓고 들어간다. 광기(일본식 광기)의 인질범들은 그녀에게 성폭력을 포함한 엄청난 육체적 폭력을 행사한다(이유는 형사가 아닐까 의심해서란다).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든 폭력을 참아낸다. 

 그녀의 독특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폭력과 무표정 사이에 우리는 은연중 약속을 받게된다. 그녀의 무표정 뒤에는 묘책이나 화려한 복수의 액션이 있을거라고.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그 폭력을 무표정하게 감내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따라다니는 답답함 뿐이다. 설마설마했는데 아무런 묘책이나 복수액션이 없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기막힌 코미디다(물론 엔딩은 그녀의 화려한 붉은 수갑의 몫이지만). 헐리우드식 영웅을 뒤집는 반영웅의 의도라고 믿어 주고 싶을 정도. 

 B급 감성, 그것도 일본의 B급 감성에서 자꾸 무엇을 억지로 발견하려 하지는 말 것. 타란티노가 본 것은 그 시각화 내지는 캐릭터이지 뭐 다른 것 있겠나. 어쩌면 그의 영화와 그의 관객은 오리엔탈리즘의 한 표본일지도 모른다. 동양식 판타지의 서양식 거푸집. 
 제 아무리 키득거리며 강간장면에서 미군 비행기가 날고, 광기집단의 리더가 미해군복을 입고 난리를 치고, 소변금지 미국인의 집에 보란듯이 오줌을 갈기는 장면을 넣는다고 해도 신경증같은 당시 일본의 반미의식을 읽기는 어렵다. 뭐 그렇지 아니하지 아니한 따위가 되는 것. 

 그러나 좀 더 잘 노출하고 잘 죽이고, 거짓말 같이 살아남을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인 장치와 장면화들은 느닷없이 대박 화면을 만들기도 하니 B급 영화의 매력은 어쩌면 그런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스기모토 미키의 나름 백치미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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